[뉴스락] 현대중공업이 조선업 하도급업체를 상대로 기성금(공사대금)을 후려치기(단가를 터무니없이 깎는 것)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사내 협력업체 ‘대한기업’ 김도협 대표는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현대중공업㈜의 “갑질횡포”를 멈춰주십시요’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김 대표는 청원글에서 “3년 전 설립한 회사가 현재 4대보험 연체금 12억, 신용재단·신용기금·은행권 빚 4억 등 총 16억에 달하는 부채를 안게 됐다”며 “개인 아파트 또한 압류됐고 동생 집마저 압류돼 더 이상 물러날 곳도 하소연할 곳도 없어 게시판에 글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자신의 회사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원인을 현대중공업의 기성금 후려치기로 꼽았다. 그는 현대중공업이 박근혜 정부 당시 4대보험 납부 유예정책이 시행된 이후 유예되는 세금만큼 대한기업이 이득을 보고 있다고 판단, 기성금을 줄였다고 한다.

또한 “현대중공업이 기성금을 줄인 것뿐만 아니라 매달 공정이 바쁘다는 핑계로 인원 충원을 요구하고, 월말에는 품위서 결제가 안 났다며 기성금을 다음 달에 줄 것을 얘기했다”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부서장과 담당 팀원 전체를 인사이동해 책임을 묻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업체가 공정날짜를 준수 못하면 기성금을 줄이고 평가 점수에 반영해 업체들 줄을 세우는데 약자인 저희는 무리하고 불안전하게 일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 발생임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기성금, 월급 밀려 직원 없어 업무중단…“현대측, 업무재개 요청서 보내와”

실제로 대한기업이 지난달 현대중공업에게 받은 기성금은 약 3억원, 하지만 인건비 등 발생임금은 총 6억원에 달해 절반의 손해를 봤다. 김 대표는 이런 식으로 3년이 지나왔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가 국민청원에 남긴 게시글은 현재 9000여명이 넘는 동의를 받은 상태지만, 오히려 현대중공업 측은 청원 이후 공사를 진행하기 불가능한 대한기업 측에 공사재개를 촉구하는 협조요청 공문을 보냈다.

대한기업이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받은 6월 기성금은 약 3억3천만원(왼쪽사진), 대한기업의 6월 발생임금은 약 5억6천만원이다, 김 대표는 4대보험 유예정책 이후 현대중공업이 보험료만큼 기성금을 내려 고스란히 10억의 빚이 생겼다고 주장했다/사진=대한기업 제공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작업자들이 임금이 자주 밀려 대다수 퇴직을 하고 남은 이들도 임금이 해결되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 도저히 공사를 재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현대중공업에 밀린 임금에 대한 책임소재를 함께 분명히 하자고 답장 형식의 공문을 보냈지만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선공정 후계약으로 인해 발생임금의 절반도 못 미치는 기성금을 받게 되고 이마저도 품위서 결제가 안 됐다는 이유로 다음 달로 밀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관련 내용으로 항의를 하려 했지만 담당자뿐만이 아닌 담당부서 팀원 전체를 인사이동 조치해, 그 뒤에 온 담당자는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식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 대표는 이러한 현대중공업 측의 입장이 자신의 기업인 대한기업과의 도급계약을 끊기 위한 무언의 압박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통상 도급계약은 일정 부분 선계약을 한 뒤 공사를 진행하지만, 현대중공업은 사내에 협력업체 여러 곳이 존재해 본사 부서에서 일방적으로 업체별 담당 구역을 배당하고 있다고 한다.

본사는 블록별 공사대금을 정해놓는데 이것이 일방적이면서도 정확한 계산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어서 아무리 이에 맞춰 공사를 하려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블록별 예산 외 추가 공수라는 명목으로 다른 일거리의 코드를 만들어 추가 대금을 지급한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이것이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현대중공업에 줄을 잘 서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을의 입장에 있는 것이고, 자신이 기성금을 올려달라는 주장을 한 뒤로 대한기업이 현대중공업의 눈 밖에 나면서 담당 부서 전체를 바꿔가면서까지 기성금 지급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현대중공업이 협력업체들을 대상으로 순위를 매겨 사실상 갑질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성금에 대한 문제 제기 이후 대한기업의 평가점수가 급락했다"고 덧붙였다/사진=대한기업 제공

실제로 김 대표는 두 달 전 사측으로부터 1억원의 보상금을 줄테니 폐업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마저도 조선협회를 통해 전해들은 내용으로, 당시 김 대표는 현대중공업에 찾아가 항변했지만 별 소득 없이 복귀해야 했다.

청원 이후 사측의 대화 시도가 없었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국민청원을 하기 전까지는 ‘자신에게 결정권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던 직원이 별안간 청원 이후 면담을 요구했다”며 “결정권 없는 직원과 이야기해서는 소용이 없을 것으로 판단, 실질적으로 권한을 갖고 있는 직원과 대화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사측은 이를 두고 ‘대한기업 대표가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사 진행 당시에는 매일 변동되는 인원의 충원과 감원에 관여하고 공사완료를 무리하게 재촉하기도 하면서, 도급계약 관련 문제에 대해선 별개 회사 간의 계약 진행상황 문제라고 선을 긋는 것이 어이가 없다”며 “단순히 협력업체 대표로써 항쟁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우리 직원들의 밀린 임금을 해결함과 동시에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는 다른 협력업체를 대표해서 총대를 멘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 현대중공업, “공정률 따라 적법 지급했다”…위반 사항 없음 주장, “조선업 전체 힘든 상황, 우리도 마찬가지”

이번 사태에 대해 현대중공업 측은 “도급계약상 위반 사항이 전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기성금이 낮아진 것이 아니라 도급계약에 따라 공정률의 단계만큼 기성금이 지급된 것”이라며 “계약한 물량의 공정률에 따라 대금을 지급하는 것이므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삭감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4대보험 유예정책 이후 기성금이 줄어든 것에 대해서는 “4대보험료는 대한기업이 내는 것이므로 기성금의 증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답했다.

인원 충원 및 감원에 간섭했다는 주장에 대해서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제품을 기간 내에 완성해야 하는 도급계약 특성상 공정률이 지연되고 있다면 이를 맡긴 회사 입장에선 서둘러달라고 충분히 얘기할 수 있지 않냐”면서 “인력을 강제로 충원하라느니 감원하라느니 지시할 권한은 현대중공업에 없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책임회피성 인사이동이 있었다는 김 대표의 주장에 대해 “조선업 일감 부족으로 사내 조직 변경이 많은 상황에서 이뤄진 전사 조직개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또 관계자는 “사측도 대한기업의 업무중단으로 인해 후속공정이 밀려있는 상태”라며 “조선업이 전체적으로 어렵다 보니까 하도급업체들도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기업의 갑질은 절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 대표는 현대중공업의 이러한 답변에 대해 “인원 충원을 지시하는 내용의 녹취 파일 등 자료가 준비돼 있다”고 말하면서 향후 법적 다툼을 암시하기도 했다.

만일 해당 지시가 사실일 경우 도급계약의 범위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초과 발생임금에 현대중공업의 인력 충원 지시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도급법 위반 논란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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